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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거꾸로 먹기
나이 거꾸로 먹기
2010-12-23 (Thu) 마을지기 [2010-12-24 01:47]
전대환 미즈내일
나이 거꾸로 먹기
전대환 (구미 한울교회 목사 | 전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얘가 정신이 있는 애야, 없는 애야?” 이 추운 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딸내미를 본 아내의 말이었다. 뒤를 이은 딸내미의 대답은 이랬다. “엄마, 정신은 있는데 바지가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온 식구가 한 바탕 웃었다. 20대 초반의 발랄하고 센스 있고, 총기 있는 모습에 새삼 젊음이 부러웠다.
언제부턴가 나는 외출할 때마다 주문을 외는 버릇이 생겼다. “열휴지가 열휴지카 열휴지카….” 열쇠와 휴대전화기와 지갑과 카메라. 외출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물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키를 들고 나가지 않아서 자동차까지 갔다가 도로 방으로 돌아오는 일은 부지기수이고, 지갑을 챙기지 않아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외상으로 달아두고 온 일도 몇 번 있고, 키를 꽂아둔 채 자동차 문을 잠가서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는 일도 해마다 한두 차례씩은 있다.
그래도 무언가를 잊어버려서 큰일을 낸 적은 없으니 감사해야지. 돌이켜보면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요즘이나 그런 생활패턴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을 보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다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듣는 일이 많아져 기억할 데이터가 많이 쌓인다는 뜻인데, 데이터 관리만 잘한다면 기억력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뇌가 기억해야 할 내용을 상당부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담아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조 장치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메커니즘은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그 훈련을 위해서 숫자를 늘 달고 산다.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할 때도 정해진 시간에 몇 걸음을 걷는지 세면서 걷는다. 그 덕에 어디서든 한 번만 걸어보면 두 지점의 거리를 거의 정확히 추측할 수 있고, 시계를 보지 않고 눈을 감고 있어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전문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두뇌운동을 활발하게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란다. 그래서 인류의 조상들도 시간과 공간의 단위를 만들어서 숫자를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게 해놓은 것 같다.
해가 저물어 12월도 막바지다. ‘열둘’처럼 우리 삶에 밀착된 수도 드물다. 한 해는 열두 달, 시계의 눈금도 열두 개, 별자리도 열둘, 예수의 제자도 열두 명, 띠도 열둘, 전화기 버튼도 열두 개…. 열둘이 이렇게 의미 있게 여겨지는 것은 여섯씩 둘로 나눌 수도 있고, 넷씩 셋으로 나눌 수도 있고, 셋씩 넷으로 나눌 수도 있고, 둘씩 여섯으로 나눌 수도 있는 유연함 덕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떤 식으로든 숫자를 세는 것은 기억력 감퇴를 늦추어주기도 하고 세월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매년, 매달, 매일, 매시간, 무슨 수든 열심히 세자. 일 년에 한 번 오는 우리 앞의 큰 숫자도 경건한 마음으로 세면, 남들 나이 먹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젊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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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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