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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움의 경쟁력
자연스러움의 경쟁력
2011-07-25 (Mon) 마을지기 [2011-07-26 16:55]
전대환 미즈내일
자연스러움의 경쟁력
전대환 (구미 YMCA 이사장)
밭에서 깻잎을 한 움큼 땄다. 저녁에 쌈을 싸먹어야지,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밭을 나섰다. 올해 초에 텃밭을 하나 빌렸는데,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라 자주 드나드는 편이다. 농사에는 완전 초보인지라 엄청 헤매고 있지만, 하늘과 땅이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그나마 철 지난 밭에서 이삭 줍듯이 드문드문 거두어들이는 것들도 있다. 그날도 깻잎과 함께 건질 게 몇 가지는 있었다. 호박 한 개, 오이 두 개, 고추 서너 개, 방울토마토 대여섯 개를 ‘수확’했다. 열 평, 그러니까 30제곱미터 남짓한 손바닥 만 한 밭뙈기인 데다가, 심어놓고 이따금씩 풀 뽑아주는 것 빼면 별로 하는 것도 없지만 작물들이 자라주는 게 신기하다.
그래도 거기서 나는 것들만 가지고는 먹을거리 조달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한 주에 한 번은 장보기를 하는 덕에 배추 한 포기가 얼만지, 생필품 값은 얼마나 올랐는지 등등, 먹고 사는 데 필요한 품목들의 물가동향은 비교적 소상히 아는 편인지라 눈에 번쩍 뜨이는 게 있었다. 물론 할인판매 행사 중이었지만 깻잎 두 묶음을 290원에 팔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뭐야, 조금 전에 밭에 가서 땀 흘리며 따온 깻잎은 100원어치도 안 된다는 거잖아. 밭 임대료와 자동차 연료비와 거기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텃밭 가꾸기는 미친 짓인 거야?’ 이런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러나 아니었다.
‘저건 그냥 깻잎이지만 내가 따온 건 약초야.’ 텃밭을 드나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이다. 1그람의 건강한 흙 속에는 미생물이 수백만 마리나 살아 움직이고 있다지 않은가. 농약을 안 쓰고 화학비료를 안 주는 땅 이야기다. 그걸 빨아 당겨 영양소로 삼을 뿐만 아니라 주인 잘못 만난 탓에 하늘에서 오는 비 외에는 물 공급도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뜨거운 여름태양에 타 죽지 않으려면 있는 힘을 다해 땅속의 수분을 끌어올려 생명을 지탱해야 할 터이니 그 깻잎의 생존력은 얼마나 지독할 것인가. 비록 구멍은 숭숭 나 있고 크기도 들쑥날쑥이지만 그건 약초다. 방울토마토도 그렇고 오이도 그렇다. 마트에서 파는 인삼과 깊은 산속에서 나는 산삼을 비교할 수 없듯이, 비닐하우스 속에서 별 고생 없이 자란 채소와 우리 밭의 채소들 역시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마트에서 산 채소들은 하룻밤만 지나면 물러버리는 것이 보통인데, 열무든 상추든 밭에서 따온 것들은 상온에서 며칠을 두고 먹어도 싱싱한 것을 보면 그 생명력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에 ‘자연산’ 회를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큰 도시에 사는 마음씨 좋은 어떤 분이 시골 목사 호강시켜 준다고 대접한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값이 상상 이상인 ‘귀한 몸’을 한 끼에 먹어치운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채소도 양식산보다는 자연산이 훨씬 귀한 대접을 받아야 할 터인데 마트에는 온통 규격화된 공장식 채소들뿐이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 하는 말이 생소하지 않을 정도로 요즘은 사람 얼굴도 규격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예전엔 넷밖에 안 되는 핑클 멤버를 구분하지 못해 갑갑함을 느끼다가 요즘에는 소녀시대 멤버가 아홉 명이나 돼서 아예 인물 구분하기를 포기하고 사는데, 앞으로 인물 규격화가 가속화되면 바코드스캐너를 갖다 대기 전엔 사람도 못 알아보는 눈뜬장님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렇거나 말거나 내 눈에는 양식산보다는 자연산 회가, 마트에서 파는 잘난 깻잎보다는 우리 밭에서 나는 구멍 난 깻잎이, 허여멀건 미끈한 원장님산보다는 생긴 그대로인 엄마산이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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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5 (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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