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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대통령의 기도
[전대환 칼럼] 대통령의 기도
2011-03-09 (Wed) 마을지기 [2011-03-09 14:16]
전대환 내일신문
[전대환 칼럼] 대통령의 기도
전대환(구미 한울교회 목사)
기사입력 2011-03-09 오후 12:56:14
상궁이 옷의 치수를 재기 위해 잠시 돌아서달라고 하자 어린 왕비가 추상같이 대답했다. "네가 돌아서면 되지 않느냐?" 감히 왕비보고 명령을 하다니…. 영조대왕이 나이 66세에 맞이한 정순왕후 이야기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다섯이었다. 아무리 왕비라고 하지만 나이 열다섯에 이 정도 기개를 보였으니 대단한 여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 아무개 씨를 두고 한 말이다. 가운데로 좀 서 달라, 표정을 좀 밝게 해 달라 등등 그는 대통령에게 꽤 많은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집무실에, 전용기에, 심지어 침실에까지 대통령을 따라다니던 그였지만, 그런 요청의 말을 할 때마다 얼마나 대통령을 어려워했을까.
지난 3일, 대통령에게 제대로 명령다운 명령을 내린 이가 있다.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것도 대통령 혼자만이 아니라 영부인까지 쌍으로. 한기총 회장 길자연 목사다. 국가조찬기도회 자리에서였다. 기도회를 진행하면서 길 목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라며 예정에 없던 발언을 했다.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장로가 기도회 자리에서 목사 말을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었는데, 길 목사는 그 뒤에 "국부가 무릎 꿇은 것은 대단한 용기"라며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그러나 길 목사는 이 과정에서 세 가지 무리수를 뒀다.
길 목사의 3가지 무리수
첫째, 공개된 자라에서 대통령 내외를 무릎 꿇린 것이다. 대통령도 기독교인이니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대통령에게 누를 끼쳤고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예수는 말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예수는 사람들 앞에서 '폼 잡고' 기도하는 사람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지는 곳이라면 '큰 거리 어귀'나 다름없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무릎을 꿇고 회개하십시오!" 했어야 옳다. 예수는 티내며 기도하지 말라고 했다.
둘째, 예정에 없던 즉흥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구약에 보면 사울도 즉흥적인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길 목사도 사울처럼 영(靈)을 받아 그런 제안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동도 공개된 자리에서는 피해야 할 일이다. 대한민국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남들 앞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교인들의 별난 행동을 볼 때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했다. 돌출행동을 해서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얘기다.
셋째, 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표현한 것이다. 국부란 절대 권력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다른 좋은 말을 다 두고 왜 하필 그 낱말을 끄집어내어 썼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장로를 이승만 장로처럼 생각하고 "우리들은 이대통령 뜻을받드러 자유평화 올때까지 멸공전선에 몸과맘을 다바치어 용진할것을…"하던 대통령 찬가라도 부르고 싶었던 것일까. 국부란 나라의 아버지다. 세상에 아버지를 선거해서 뽑는 나라가 어디에 있기에 그런 표현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아버지를 선거로 뽑는 나라 있나?
기독교 행사 가운데 이른바 부흥회라는 것이 있다. 물론 건전한 부흥회도 많지만, 부흥강사 목사들이 설교의 반 이상을 자기자랑으로 채우는 일도 있다. 자기가 이만큼 교회를 성장시켰네, 누구누구의 병을 고쳐주었네, 하는 것들이다. 그 가운데서 압권인 것은 아무개 명사 또는 고위관료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게 했다는 자랑이다. 길 목사는 어디 가서 '내가 대통령을 무릎 꿇게 만든 사람이오!' 하는 자랑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건 결코 자랑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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