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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전
먼저 ‘2005년 전’이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가 언제냐 하는 문제는. 기원전 12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기원전’이라 할 때 ‘기원’(紀元)이란 말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부터 연대를 세기 시작하자는 것이니, 그분이 기원전 몇 년에 태어나셨다는 말 자체가 사실은 모순이다. 이것은 처음으로 서력기원을 쓰자고 제안할 때 연대 계산에 착오가 있었고,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주변 역사의 연대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생긴 오차이다.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켰던 것은 4세기 이후의 일인데, 사실 이 날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바로 그 날은 아니다. 그 이전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을 탄생일로 생각했고, 지금도 그 날을 성탄절로 지키는 나라가 여럿 있다. 그러나 날짜가 중요한 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지키고 있으니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신날로 삼는다고 그분께서 화내실 일은 아니리라. 어쨌든 2천 년쯤 전 어느 날이라고 해 두자.
돈 없어 서러웠던 밤
지금부터 2천 년쯤 전, 로마의 식민지로 있던 유대 나라의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도시에 외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일이 있었다. 로마 황제가 인구조사를 명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모두 직접 와서 호적 등록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 사람들 중에 젊은이 한 쌍이 있었다. 남자는 요셉, 여자는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 그런데 여자는 만삭이었다. 그들은 몇 백리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호적 등록을 위해서 요셉이 베들레헴에 간 것은 이해가 되는데, 약혼자를 데리고 갔다는 것은 좀 뜻밖이다. 성경의 어떤 사본에 ‘약혼자’가 ‘아내’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마리아의 혼전 임신 사실이 가문에 알려져서 두 사람이 쫓겨나다시피 나와서 따로 살게 되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장거리 여행을 계획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당시 풍습으로는 혼전임신이 들통 나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으니까), 어쨌든 그들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난처한 젊은이들이었다.
성경에는 그들이 ‘방이 없어서’ 남의 집 마구간에 들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방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겠지. 예나 지금이나 돈이 있는데 방이 없을 까닭이 없다. 만일 요셉이 돈 많은 사람이었든지, 예루살렘 같은 큰 도시에서 온 ‘잘 나가는’ 사람이었든지,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든지, 베들레헴에 아는 사람이 있었든지, 그랬다면 방을 못 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유대 사람들이 무시하는 북쪽 갈릴리 근처의 나사렛 사람이었고, 돈도 배경도 없는 목수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고향 동네라 하지만 그는 거기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자나 겨우 구해서 왔을 요셉이 방을 구하기란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춥고 배고프고 서럽게 시작되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그 날 밤 마구간에서 그렇게 태어난 아기가 예수였으니까.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예수의 동족들은 그 날 밤에 일어난 일에 아무 관심도 없었고 찾아온 사람도 없었다. 다만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찾아왔다고 되어 있는데,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철야작업을 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 성경에는 목자들이 한밤중에 천군천사의 합창소리를 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동네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모두 집밖으로 뛰어나와 보았어야 정상인데, 그 날 밤은 그야말로 ‘고요한 밤’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라는 ‘불쌍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것을 목자들에게만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히 알려주신 듯하다.
‘예수’란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점지된 아기의 이름은 원래 ‘임마누엘’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기 예수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높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찍어서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사람들 가운데로 오신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춥고 서러운 밤에 촌 동네 마구간에서 태어난 그 아기가 곧 하느님이란 이야기다.
만일 요즘이라면
만일 2천 년 전의 유다 땅 베들레헴이 아니라, 21세기 초의 대한민국에 예수님이 태어나신다고 가정하면, 과연 어디를 골라 태어나실까?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만한 장소는 어디일까? 하룻밤 숙박비가 몇 백만 원 하는 서울특별시의 특급 호텔일까? 아니면 부자들이 묵는 일반 호텔이나 중산층 사람들이 묵는 모텔일까?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여인숙일까? 가난한 학생들의 자취방일 가능성은 없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노숙자들이 몸을 누이는 공원 벤치나 지하도 또는 역 대합실은 예수님의 탄생 장소로 어떨까?
어째서 베들레헴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 방 한 칸을 못 내드렸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 보고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돈 없는 낮선 사람들을 누가 자기 집에 들여 재워주겠는가. 우리는 과연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여 방 한 칸을 내드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수님은 장성해서 활동하실 때도 그러셨지만, 태어나실 때도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죄수의 모습으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는 도망자의 모습으로, 제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장애인의 모습으로, 고아나 외톨이의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 우리는 그런 모습의 예수님을 위해서 방 한 칸을 내놓을 수 있을까? 더럽다고, 돈 없다고, 낮선 사람이라 못 믿겠다고, 딴 집에 가보라며 당연히 내치지 않겠는가?
메리 크리스마스!
가난하고 더러운 낮선 사람 하나 불러들여 자기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고 자기 이부자리 내서 재워주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죄스러운 마음으로 자선냄비에 천 원짜리 몇 장 남몰래 집어넣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다. 어깨에 힘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배고픈 사람들을 예수로 알고 극진히 섬기지 못해 부끄러워한다면, 날짜야 언재가 됐든, 그 날이 크리스마스다. 우리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희희낙락할 때 가난한 예수들은 밖에서 얼어 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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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9 (Mon)
전대환 [2005-12-20 16:34]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