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글들은 대개 전대환의 저작물들입니다.
글을 사용하시려고 하는 경우 반드시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전대환 칼럼] 실언의 끝
[전대환 칼럼] 실언의 끝
2013-03-25 (Mon) 마을지기 [2013-03-25 16:03]
전대환 석간내일신문
[전대환 칼럼] 실언의 끝
전대환(한울교회 목사 | 구미 YMCA 이사장)
한 소녀가 우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지나가던 청년이 그 소리를 듣고 그를 구출해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마침내 장래까지 약속했다. 대사에 증인 설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근처에 있던 족제비와 우물을 증인으로 세웠다. 처녀는 그 약속을 지키며 오래 기다렸지만 청년은 소식이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서 살다가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아이도 둘을 낳았다. 그런데 어느 날 첫째 아이가 풀밭에서 놀다가 족제비에게 물려서 죽었다. 얼마 후 둘째 아이도 우물에 빠져 죽었다. 그제야 청년은 예전의 약속을 떠올리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동화니까 그렇지, 약속 안 지켰다고 족제비와 우물이 어떻게 그걸 알고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어?" 그런 생각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자연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사실이다. 강아지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심지어는 식물들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말을 해주면서 키운 식물과 그냥 키운 식물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논밭의 작물이 농사꾼의 발자국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다.
자연까지 움직이는 것이 말이니, 사람에게는 오죽하랴. 군인들을 연병장에 세워놓고 앞에서 지휘관이 구령을 내리면 '열중 쉬어!'든 '차렷!'이든 구령대로 척척 움직인다. 이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말'이다.
신뢰 허물어지면서 지지율 하락
"얘, 순희야!" 하면 순희는 뒤를 돌아본다. "너, 여기 좀 와 볼래?" 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게 되어 있다. 이게 말의 위력이다. 이건 '말주변'과는 다른 문제다. 말의 힘은 언변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얼마 전 어느 모임 사회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모두 일어나셔서 애국가를 부르겠습니다." 결과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말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만일 똑 같은 말을 광화문 네거리나 서울역 광장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보나마다 사람들은 "별 미친 놈 다 있네!" 하면서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행사장에서는 그게 통했지만, 신뢰를 종잡지 못하는 행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달이나 지났지만 그의 국정 지지율이 좀처럼 오를 기미가 없다. 불통의 스타일이나 인사 난맥상도 원인이겠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던 '신뢰'가 허물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노령연금 일괄지급이나 4대 중증질환 완전보장 같은 그의 핵심공약들이 눈앞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당사자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여권 일부에서, 그것은 공약이라기보다 '캠페인'이었다는 궤변으로 얼버무리고 있지만 국민들은 이미 747공약이 공약(空約)이었음을 경험한 터다. 그밖에도 허언(虛言)으로 귀결될 공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뢰밭이 첩첩이다.
지난 연말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가 터졌을 때 박근혜 당시 후보는 "민주당은 성폭행범이나 사용할 수법을 동원해서 국정원 여직원을 사흘 동안 물도 못 먹게 감금했다"고 일갈했다. "흑색선전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면서 민주당을 비난하며 사과하라고 다그쳤다. 물론 당시에는 확신에 찬 발언이었을 수 있지만, 시일이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지 않은가.
소음 계속되면 지지자들도 짜증
국정원에서 조직적으로 정치적 댓글을 달거나 추천을 했던 것, 그 일에 민간인까지 동원되었던 것, 거기에다가 원세훈 원장의 지시사항이었다는 증거까지 쏟아지고 있으니, 박 후보의 말은 명백한 실언(失言)이 되었다. 얼른 수습하지 않으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발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는 말은 힘이 있어서, 고삐로 말(馬)을 끌듯이, 핸들로 자동차를 움직이듯이, 키로 배를 움직이듯이, 말로써 국민을 움직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실언이 잦아지면 그 끝은 공허밖에 없다. 남대문 시장에 서서 "우리 다 같이 찬송합시다!" 하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본인이나 타인의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 말은 소음일 뿐이다. 소음이 계속되면 지지자들도 짜증을 내게 되어 있다.
저작권 ⓒ 이야기마을™, 1997~2014. 마을지기: 전대환. 모든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이름 *'이야기마을'은 특허청에 등록된 서비스표입니다(제41-0179291호).
온라인 오프라인 출판 분야에서 이 사이트 외에서는 '이야기마을'이란 이름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사이트저작권]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2013-03-25 (Mon)
마을지기 [2013-03-25 16:03]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