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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언어폭력
[전대환 칼럼] 언어폭력
2015-02-11 (Wed) 마을지기 [2015-02-11 14:42]
전대환 석간내일신문
[전대환 칼럼] 언어폭력
전대환(구미YMCA 이사장 | 한울교회 목사)
2015-02-11 12:47:18 게재
아무리 미사여구를 들이대도 세상에 선한 폭력은 없다. 말로써 남을 해치는 폭력은 더 무섭다. 욕설이나 비방은 말할 것도 없고, 침묵으로 남의 속을 긁는 것도 적은 폭력이 아니지만, 언어폭력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거짓말이다. 그러나 거짓말이라고 해서 모두 폭력은 아니다. 오히려 거짓말이 필요한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상사가 더 윗선의 상사에게, 이건 아무개의 잘못이니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직고하기보다, "다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더 큰 신뢰감을 주게 될 것이다. 결혼해서 아내와 10년쯤 같이 산 남자가 진실을 말한답시고 "여보, 이제 당신은 흥미 없어. 다른 여자한테 관심이 더 많아!"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도둑을 일컬어 '양상군자'라 칭하는 게 썩 옳은 일은 아니지만 이해는 할 만하다. 그런다고 도둑이 주인으로 돌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실을 두고 어느 정도의 포장을 하는 것은 대체로 용인되는 '관용'이다. "질소를 샀더니 거기에 과자도 들었더라!"라며 과자 제조사의 과대포장을 비꼬기도 하지만, 비난받을 만한 일이기는 하나 그것도 포장의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검찰의 항소와 구형은 '쇼'였나
사실관계를 완전히 왜곡하는 거짓말과, 말하는 이 본인을 배신하는 궤변이야말로 심각한 언어폭력이다. 속된 말로 듣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최근 정치권에서 언어폭력이 연이어 자행되고 있다. 그동안 국민들이 워낙 이런 꼴을 많이 봐서 둔감해졌을 수도 있지만, 둔감하다고 폭력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 말 같지 않은 말이 고위공직자의 입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나라의 근간을 흔들만한 위험한 일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9일 국정원법 위반과 더불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1심판결이 뒤집어진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 한쪽은 박수를 치고 다른 한쪽은 땅을 치게 되는데, 이번에는 양쪽 모두 땅을 쳤단다. 죄질의 경중을 떠나서, 1심에서 풀려났다가 이제 와서 다시 징역을 살게 됐으니, 원세훈 전 원장 쪽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검찰 쪽에서도 불평이 터져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판결 다음 날 CBS는 라디오 뉴스에서,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가 재판결과를 전해들은 뒤 "뭐 저런 판사가 다 있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말이, 당초에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했으나 3년으로 결정났다고 해서 나온 불만은 아닐 것이다. 1년 정도 차이면 검찰의 선방이기 때문이다. 전해들은 말이고 이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만일 정말 고위 검찰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것은 검찰의 자기배반이다. 항소와 구형이 '쇼'였다고 자임하는 셈이 아닌가.
뉴시스는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나는 한번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과 회동하는 자리에서 그랬단다. 박 대통령은 또 전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TV토론회에서 박 후보가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말한 것은 온 국민이 알고 있다. 그때 그는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라고 했다.
'증세없는 복지' 연달아 말 바꾸기
박근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의 흐름을 짚어보자. 2012년에는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주장했는데, 최근 증세(연말정산과 담뱃세 인상 등)를 감행했다. 9일에는 '증세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하더니, 10일에는 '증세 없는 복지를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도무지 논리를 찾을 수가 없다. MB가 강을 다 망가뜨려놓고 '강 살리기' 했다고 우긴 것도 아직 소화를 못 시켰는데, 후임자까지 언어로 국민에게 혼란을 주고 있으니 국민노릇도 참 힘겹다.
명백한 거짓말이나 자신을 배신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지능에 문제가 있거나 양심에 문제가 있거나 둘 가운데 하나다. 어느 경우든 그런 이들이 고위공직을 계속 맡고 있는 것은 국가의 재앙이다. 진정성 있는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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