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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佛家)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불심(佛心)이 깊은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가을을 타고 탐스럽게 익은 조 밭 옆을 지나게 되었다. 조가 너무나 잘 익어, 사나이는 조를 손으로 살짝 만져 보았다. 그랬더니, 익을 대로 익은 조 세 알이 손으로 떨어졌다. 귀하게 농사지은 것이라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입에 털어 넣고 먹어버렸다.
그 대가로 이 사나이는 소가 되어 그 밭 주인인 농부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조 한 알에 1년씩, 도합 3년에 걸쳐 농사를 지어 주었는데, 소가 들어온 후부터 농부의 집은 농사도 잘 되었을 뿐더러 하는 일마다 형통(亨通)하여 마침내는 거부(巨富)가 되기에 이르렀다.
열심히 일을 마치고 삼 년째 되던 날, 소는 농부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른, 이틀 후에 이 마을에 흉악한 도적떼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술이랑 음식을 충분히 장만해 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주인은, 소가 말을 하는 데 대해서 놀라기도 했거니와, 도적이 온다는데 음식을 장만하라는 소리에 하도 이상해서 소에게 말했다.
“아니, 도적떼가 오면 물리칠 궁리를 해야 마땅하거늘, 도리어 음식을 장만하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걱정 마십시오, 주인 어른. 저에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주인 어른께는 아무 해도 못 끼치게 제가 책임질 터이니 아무 염려 마시고 음식이나 준비해 두십시오.”
농부는 영문을 몰랐지만, 보통 일은 아니다 싶어 소가 시키는 대로 음식 준비를 멋들어지게 해 놓고는 도적떼를 기다렸다.
아닌게 아니라 소가 말한 그대로, 온갖 무기들로 무장한 도적떼가 마을에 몰려 들어 이 농부의 집까지 오게 되었다. 일단 시장하던 터라 앞뒤 가릴 것 없이 차려진 음식을 맛나게 먹어치운 뒤 두목이 농부에게 물었다.
“주인장, 오늘 이 집에 무슨 잔치가 있는 날이오?”
“아니올시다. 잔치는요. 당신들이 온다기에 미리 음식을 좀 장만해 둔 것 뿐이지요.”
도둑떼들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출몰(出沒)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하여 두목은 농부에게 되물었다.
“아니, 우리가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소? 당신이 신통력을 가지기나 했단 말이오?”
“아닙니다. 제가 무슨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우리 집 소가 말해 준대로 했을 뿐인걸요.”
“소가 말을 해? 사람을 놀려도 분수가 있지. 예끼, 이 친구야”
하고는 너털웃음을 한바탕 웃었다. 좋은 음식을 잔뜩 배불리 먹은 터라, 흉악한 도둑이라도 거기에 대해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바로 이 때, 외양간에서 소가 어슬렁 걸어나오더니 쇠가죽을 벗어버리고 본디의 불자(佛者)로 되돌아왔다. 좌중을 둘러본 불자는 그 자리에서 설법(說法)을 폈다.
“나는 원래 소가 아니었소. 길을 가다가 잘 익은 조밭이 있기에, 하도 탐스러워 손으로 만져 보다가 그만 조 알이 손바닥으로 떨어져, 그걸 버릴 수도 업고 해서 내가 먹었는데, 그 조 세 알로 인해 내가 3년 동안 이 집에서 소가 되어 일을 해 주었소. 그런데 당신네들은 창칼로 아무 죄 없는 양민들을 상대로 도둑질을 일삼고 있으니, 그 업보(業報)를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시오? 당신들이 강탈한 재물을 다 계산한다면 소가 되어도 수를 셀 수조차 없지 않겠소?”
설법을 들은 도둑들은 그제야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고 수행을 잘 하여 후에 5백 나한(羅漢)이 되었다고 전한다.
한낱 전설(傳說)이나 신화(神話) 쯤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으나,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 번 돌이켜볼 생각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
내 형님이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6.25 난리 때, 피난을 가던 길이었단다. 피난 길에 길가 과수원이 하나 있었는데, 주인도 다 피난을 가고 없고 해서 사람들이 나무에 열린 사과들을 부담없이 따 먹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아무 생각 없이 남들 따라 사과를 하나 따 먹으려고 했다가 어머니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단다.
“아이고, 야들아. 안된데이. 아무리 난리통이라도 나무 꺼(남의 것) 손대는 기 아이다.”
어머니는 수년 전에 명을 달리하셨지만, 전쟁 이후에도 수십년 동안 우리들에게 그런 식으로 당부하시며 살아 오셨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아닌가 한다.
우리들의 삶을 한 번 돌아보자. 작은 것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쉬운 때라는 생각이 든다. 물자(物資)가 흔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남의 것 내 것 따질 것 없이 너무도 물건들을 함부로 다루는 일이 많음을 흔히 본다. 남들이 구식이니 좁쌀이니 한대도, 우리 집에는 10년이 넘은 옷가지나 물건들이 허다하다. 그것도 묵혀 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다 사용되고 있는 것들로 말이다. 심지어 10년이 다 된 10원짜리 지우개 하나도 아직까지 내 서랍에 남아서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속해 있는 일터의 책임자가 아무리 미워도, 그들이 나의 노동력을 아무리 착취(?)한다손 치더라도, 소 될 짓은 하지 말자. 볼펜 심 하나, 메모지 반 쪽의 씀씀이만으로도 골백번 소가 되어도 부족한 오늘날의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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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1-10 (Wed)
전대환 [2004-09-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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