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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줄 아는 지혜
물러설 줄 아는 지혜
1996-04-03 (Wed) 전대환 [2004-09-28 00:29]
전대환 내일신문
이차 대전 당시 일본군 3개 사단이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가 한 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하고 실종되었던 일었다고 한다. 길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길을 잃었던 것이다. 방향 감각을 잃으면 제자리에 설 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혼미한 상태일수록 더욱 빠르게 움직이려 하는 속성이 있다. 쥐를 가지고 실험해본 결과, 쥐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 때 동작이 흐트러지면서 움직임에 가속도(加速度)가 붙는다고 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물러설 때를 안다.
물러설 때라고 판단이 되면 깨끗하게 물러서자.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감각을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해대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다. 아이들이 (때때로 어른들도 그렇지만)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서 눈이 충혈이 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계속해 보아야 자기만 손해인데도 물러서지 못한다. 놀음을 하는 사람들이 돈을 잃고도 계속해서 더 빠져드는 것도 물러설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 계속 덤벼서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얼마 전 이창호 7단과 마효춘 9단이 바둑을 두다가 한두 집 차이의 불리한 승부를 내다보고 미련 없이 돌을 던지는 마효춘 9단의 모습은 얼마나 멋있었는지...
물러설 때는 후일(後日)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 나라 정치판이 망조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이 후일을 도모하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당(黨)으로 모였다가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금방 탈당을 해서 새로운 당을 만든다. 한 편으로 볼 때 진취적이고 창조적이라고 보아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지혜롭게 물러설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물러서면서는 반드시 활로(活路)를 모색해야 한다. 자기 앞에 있는 장벽을 인식할 때 사람은 그것을 넘을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생기는 법이다. 에디슨은 엉뚱하다고 하여 학교에서 쫓겨나는 장벽을 만났지만, 그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여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다. 물론 타의에 의해서 물러섰던 그였지만, 그것이 새로운 활로를 찾는 배경이 되었다.
대학생들이 인생 문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다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철학 교수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교수는 아무 말 없이 휙 둘러보더니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의아히 여긴 한 학생이 그 다음 날 철학 시간에 항의를 했다. “교수님, 어제는 왜 대답도 않고 가셨습니까?” “나는 대답을 해 주었네. 자네들이 알아듣지 못한 것 뿐이야. 인생이란 와서 휙 둘러보고 가는 것이지.”
넓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살이다. 당시에는 대단한 것으로 여겨 무작정 덤벼들지만, 지나놓고 보면 물러서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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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4-03 (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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