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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세상
개같은 세상
1993-12-02 (Thu) 전대환 [2004-09-28 01:45]
전대환 천리안 작가방
어떤 사람이 자기가 기르던 진돗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더란다. 꿩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포수는 이전에 호랑이하고는 싸워본 적도 없었거니와 지금의 기진맥진한 상태로는 도저히 그 놈과 맞붙어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에 호랑이를 노려보며 한참동안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나 역부족임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잡아 놓은 짐승들이라도 있었다면 우선 급한대로 그거라도 던져 주고 다음 일을 생각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도 못할 상황이어서 궁여지책을 쓰기로 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진돗개 두 마리, 미안한 마음이야 왜 없었을까만 우선 자기가 살아야겠기에 그 가운에서 하나를 붙들어서 호랑이를 향하여 힘껏 던졌다.
‘제발 그거나 먹고 떨어져 다오. 나는 줄행랑을 쳐야겠다’
이런 말씀이었으리라. 그러나 진돗개란 본디 영리할 뿐만 아니라 용맹이 대단한 놈인지라, 그냥 호락호락 목숨을 내맡기지 않았다. 대혈투(大血鬪)가 벌어졌다.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승부가 결정났는데, 놀랍게도 승자(勝者)는 진돗개였다.
포수는 너무나도 놀랍고 고마와서, 승전용사를 얼싸안고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해 앴다.
“참으로 미안하다. 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게야. 자, 집으로 돌아가자. 너의 승전 축하 잔치를 열자꾸나.”
그러나 진돗개의 반응은 냉담했다. 원망스런 눈으로 주인을 한번 응시하고는 아무 소리 없이 뒤돌아 가버렸다. 그러자 나머지 진돗개도 자기 동료를 따라나서 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더라는 얘기다.
만일 포수가 처음부터 진돗개를 풀어서 호랑이와 싸우게 했다면 진돗개가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걸어 나가 싸웠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만 살겠다고 개를 호랑이에게 던진 것은 진돗개의 자존심상(?)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진돗개 애호가가 지어 낸 얘기인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구전(口傳)되어 내려오는 과정에서 과장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낱 짐승인 진돗개도 가장 믿었던 사람의 배신은 참을 수 없었다는 멧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되었건, 그런 것은 심심할 때 생각하기로 하고, 분명한 사실은 개란 동물은 주인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인가 어떤 사람이 개를 한 마리 키우라고 주었다. 그 때까지 몇 마리의 개를 길러본 일이 있지만, 이놈은 유난히 영리했다. 나에게 그걸 준 사람의 말로는 그놈이 진돗개 혈통을 반쯤 받은 놈이란다. 어쨌거나 그놈은 철저하게 주인을 알아본다. 우리 식구들이 오라 하면 오고 따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로 듣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진돗개다 뭐다 하지 않더라도 개들이 주인을 따른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철칙이 아닌가 한다.
무슨 시시한 “개”소리들을 그렇게 늘어놓느냐고 따진다면 할말은 없지만, 이 시기에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개들이 주인을 따르는 것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도 아니고 주인이 잘나서도 아니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주인으로부터 먹을 것을 공급받기 때문일 것이다.
3년 전, 우리나라의 귀큰 대통령이, 우리나라 농민의 수를 전체 국민의 5퍼센트 수준으로 줄여야 농촌이 부흥하리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ㅎ신문 1990년 9월 20일자 보도). 지금의 4분의 1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농촌에서 6개월 정도만 살아본 사람이라면 웃음이 나올 일이다. 기계화가 가능한 평야 지역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의 농업 구조가 어떠한지를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 보았어도 그런 소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결론은 농산물을 외국에서 수입해 들어오겠다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쌀> 수입은 그 때부터 이미 계획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석유를 무기화하고 식량을 무기화하는 전례(前例)를 보지 못했다면 몰라도, 그런 것들 때문에 먹고 먹히는 꼴들을 여러 차례 보면서도 우리의 밥줄을 간교한 코쟁이(?)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섬뜻함마저 느끼게 하는 일이다. 좀 심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자위권을 일본에 고스란히 갖다바친 구한말(舊韓末)의 상황을 연상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요즈음의 상황이다.
주인에게 목을 맡기고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는 개의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먹을 것은 우리가 생산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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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2-02 (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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