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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본심
하나님의 본심
2015-12-13 (Sun)
예레미야애가 3:31-33
전대환
한울교회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예레미야애가 3:31-33>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은 전국의 교회들이 함께 지키는 인권주일입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정한 주일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위에 성령님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의 기운이 충만히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고난의 시간

세상이 참 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에서도 ‘선생님’ 하면 몽둥이부터 생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에서든 체벌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부모라고 하더라도 아이를 학대하면 범법자가 됩니다. 성추행 문제도 그렇습니다. 최근에는 의식 자체가 많이 달라졌습니다만, 예전에는 교사가 여학생에게, 직장상사가 여직원에게 성적 수치감을 주거나 불쾌감을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피해자가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당장 ‘네가 어떻게 행동했기에?’ 하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요즘 이른바 ‘갑질’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강자가 약자에게 불이익을 줘도 그 처한 지위 때문에 항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요. 대리점이 본사에 무슨 일로 항의하면 당장에 본사는 ‘당신네 매장, 이제 끝이야!’ 하면서 계약을 해지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참습니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뭔가 부조리를 말하고 싶어도 해고 당할까봐, 아니면 따돌림 당할까봐 그러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한 국회의원이 보좌관 월급을 떼어먹다가 들통 났지요. 울산 북구가 지역구이고 새누리당 소속인 박대동 의원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보좌관이 월급을 받으면 거기서 매달 120만원씩 되돌려 받았습니다. 보좌관 월급은 나라에서 직접 통장에 넣어주니까 미리 손댈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월급이 입금된 뒤에 따로 상납을 받은 겁니다. 이래가지고 그 돈은 아파트 관리비 등으로 사용했답니다. 아니, 국회의원쯤 된 사람이 아파트 관리비가 없어서 이 짓을 합니까? 갑질이 몸에 배어서 그런 것이지요. ‘너 아니어도 보좌관 할 사람 줄 섰다. 그러니 그 돈 상납하고 일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 이런 상황 아니겠습니까? 옛날에는 독재자가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민주시민들을 탄압했지요.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돈이 인권을 유린합니다. 지구상의 돈줄을 부자들이 다 쥐고 있지요. 그들이 돈의 위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 구원의 희망

그러나 이제 세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어두운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크게 볼 때는 분명히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안 된다는 것, 그 누구도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성추행이나 폭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추가임금 없이 연장근무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 등등, 아직 완전히 지켜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급야근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직장상사가 여직원에게 좀 추근거려도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보좌관들 월급 떼어먹는 것도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안 됩니다. 안 걸리면 모르겠지만, 한번 걸려서 SNS나 언론을 타면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이것만 해도 상당히 큰 변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인권침해를 당하며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31-33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하나님이 무능해서, 또는 하나님이 관심이 없어서 그런 부조리를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옥에 갇힌 모든 사람이 발 아래 짓밟히는 일, 가장 높으신 주님 앞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일, 재판에서 사람이 억울한 판결을 받는 일, 이러한 모든 일을 주님께서 못 보실 줄 아느냐?”(예레미야애가 3:34-36). 다 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여태 그냥 두고 보시겠습니까? 하박국 예언자는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해서 하나님께 이렇게 외칩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어찌하여 나로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을 그대로 보기만 하십니까? 약탈과 폭력이 제 앞에서 벌어지고, 다툼과 시비가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하박국서 1:2-3).

■ 행복한 기다림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조리들에 대해서 침묵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서 13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앗을 뿌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습니다. 밀이 줄기가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보니까 가라지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종들이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버릴까요?”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가라지와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걸 바로 제거해버리면 해결이 될 줄 압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세포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스템 가운데 가장 으뜸은 생물의 자기 복구 메커니즘입니다. 우리가 넘어졌을 때 피부가 스쳐서 벗겨지고 상처가 나지요. 상처 난 자리를 깨끗이 하고 피가 멈추면 다시 원래의 매끈한 피부로 돌아갑니다. 몰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어도 확실하게 낫습니다. ― 가와무라 노리유키, ≪자기 치유력을 높이는 열쇠≫(도서출판 아카데미서적, 2001), 85쪽. 하나님께서 때때로 역사에 개입하시기도 하지만, 가급적이면 저절로 해결되도록 두시는 것이 그분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의 기다림도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그러시는 것도 아니고 무심해서 그러시는 것도 아닙니다.

■ 맺는 이야기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행복은 단시간이 일시적인 얻는 행복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행복입니다. 그것이 참된 인권이겠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행복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2015.12.13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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