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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보약
가을 보약
2015-11-15 (Sun)
잠언 3:5-8
전대환
한울교회



[오디오파일 듣기/내려받기]

■ 성서 본문

너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뢰하고, 너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그러면 이것이 너의 몸에 보약이 되어, 상처가 낫고 아픔이 사라질 것이다.

<잠언 3:5-8>


■ 들어가는 이야기

지난 13일 금요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이 일로 어제까지 최소 127명이 사망했다고 보도됐습니다. 중상자가 많이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니 걱정입니다. 하나님께서 희생자들을 위로해주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더 힘쓰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나라 안팎에서 우울한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지만, 여전히 올해도 추수감사절이 왔습니다. 범사에, 곧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이 오늘따라 더 무겁게 와 닿습니다.

■ 테러

엊그제 일어난 프랑스의 테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이런 사고를 냄으로써 증오를 유발하자는 뜻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테러가 일어났다, 누구 소행이냐, 이슬람 소행이다, 저 나쁜 놈들 그냥 두면 안 되겠네…, 이렇게 해서 시민들이 이슬람교도들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무슬림이 미움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과격해지겠지요. 그러니까 이들이 노린 것은 지구상의 전 무슬림들이 무장투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복음서 26:52). 세상은 결코 테러로 바뀌지 않습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였던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다. 오직 사랑만이 증오를 몰아낼 수 있다.” 오늘 구약 본문인 잠언 3:6-7을 봅시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주님을 인정해야 가는 길이 곧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을 인정하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예,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두 행복하게 사는 나라지요. 하나님 대신에 알라를 넣고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라신의 나라는 무슬림만 살고 다른 종파 사람들은 모두 멸망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 공감능력

‘너야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니까 그냥 성품의 문제쯤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공감능력이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이게 없는 사람은 대단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잠재적인 범죄자지요. ‘공감’(共感)을 영어로 ‘엠퍼시’(empathy)라고 합니다. 프랑스어로는 ‘앙파티’(empathie)라고 하지요. 우리말로 ‘감정이입’이라고도 합니다. ‘엠퍼시’는 ‘엠’과 ‘파토스’를 붙인 말입니다. ‘파토스’(pathos)는 그리스말로 ‘고통’이라는 뜻이고 ‘엠’(em)은 ‘어디어디에 있다’는 뜻이니까, 풀어서 말하면 ‘고통 가운데 함께 있다’입니다. 남의 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입니다. 20년쯤 전에 나왔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의 원작자인 미국 작가 필립 딕(Philip K. Dick, 1928~1982)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만일 어떤 로봇이 인간의 고통을 지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괴로워할 수 있다면 그 로봇은 사람의 자격을 얻을 만하다. 그 추론을 뒤집어서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각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에게서 인간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 공감의 능력 곧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폭력입니다. 살인입니다. 테러입니다. 남의 아픔을 헤아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남을 때립니다. 남의 목숨이 귀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살인을 하고 테러를 자행합니다.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전혀 갖추지 않은, 모양만 사람인 괴생물체입니다.

■ 반성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상적인 인격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혹시 괴생물체인지도 모릅니다.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까 드린 말씀 반복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라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까지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남의 존재, 남의 인격, 남의 인권, 남의 성품, 남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은 정상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괴생물체입니다. 테러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그렇다고 이슬람교도를 도매금으로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의 페이스북에서 본 글인데요, 독일의 한 무슬림 학자가 TV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누가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 무슬림인가? 누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가? 무슬림인가? 누가 2천만 명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을 죽였는가? 무슬림인가? 누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는가? 무슬림인가? 누가 1억 명이 넘는 북미 원주민들을 죽였는가? 무슬림인가? 누가 5천만 명이 넘는 남미 원주민들을 죽였는가? 무슬림인가? 누가 1억 8천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 왔으며 그들 중 88%를 대서양에 빠뜨려 죽였는가? 무슬림인가? 아니다 그들은 무슬림이 아니었다.” 일부 무슬림들이 과격행동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그들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라, 개신교도들이 한 행동도 반성해야 하고, 우리 개인이 하는 일들도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 맺는 이야기

소설책을 보면 대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일수록 위기가 심각합니다. 절정 단계에 가면 읽는 사람조차 숨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모은 문제가 해결이 되고 긴장이 풀어지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위기가 없거나 밋밋한 것은 소설도 아닙니다. 역사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습니다. 역사의 책이나 인생의 책이나 비극적인 장면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그 책의 끝이 아닙니다. 반드시 반전이 있고 반드시 한의 응어리가 풀리는 장면이 있을 것입니다. 잠언의 말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몸의 보약입니다. 그 보약을 먹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살면 우리의 역사와 여러분의 인생은 통쾌한 결말로 장식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영원토록 여러분에게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2015.11.15 구미 한울교회 주일예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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