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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말의 무게
[전대환 칼럼] 말의 무게
2015-12-28 (Mon)
마을지기 [2015-12-29 03:36]
전대환
석간내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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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환 칼럼] 말의 무게

전대환(사회평론가 | 한울교회 목사)

2015-12-28 11:40:41 게재

송년모임 곧 '망년회'(忘年會)가 많다. 그동안의 불편했던 일들을 잊어보자는 뜻에서 모이는 것인데, 잊어버리는 것이 생명체에게 유익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게 탈이 나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집단 기억상실증은 훨씬 더 위험하다. 어떤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잊자, 용서하자, 덮자 하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게 일시적인 유예책일 수는 있어도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오히려 낱낱이 끄집어내서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서 고쳐야 된다.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다. 말 그대로의 뜻은 '세상이 어둡고 어지러워 길이 보이지 않는다'이지만, 뜯어보면 단순히 세상이 혼탁하다는 것이 아니다. '혼용'(昏庸)은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의 합성어로서, 혼군은 앞뒤 분간을 제대로 못하는 군주이고, 용군은 별로 내세울 것도 존재감도 없는 군주다. 그러니까 혼용무도란 '무능한 지도자 탓에 나라가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다.

이게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다. 교수들이 지난해 말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사자성어로 골랐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긴다는 뜻이다.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경우는 사슴인지 말인지 분간도 못하는 바보이거나,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라를 바보에게 맡겨서도 안 되고 사기꾼에게 맡겨서도 안 된다. 어떤 경우든 그 결과는 혼용무도일 수밖에 없다. 바보와 사기꾼의 공통점은 그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의 무게가 가볍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사람이 말을 한번 내뱉으면 요동이 없어야 되는데, 그게 안 되면 바보나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를 바보나 사기꾼에게 맡겨서야

말 한 마디에 천금의 무게를 담아야 한다는 조상들의 교훈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25년을 같이 산 부부가 있었다. 둘의 사이는 무난했으나 다만 한 가지, 남자의 애정표현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느 날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여보, 요즘 남자들은 자기 아내한테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는데, 당신은 왜 그런 말을 할 줄 모르는 거요?" 남자가 말했다. "25년 전 우리가 결혼하기로 합의한 그날 밤, 내가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지 않소? 지금까지도 그 말은 유효하오. 만일 나의 입장에 변화가 생기면 그때 무슨 말이든지 해주겠소." 이 남자의 태도는 몰라도 논리는 존중받을 만하다.

끝까지 또는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말을 두고 니체는 깊은 고민을 했다. 조변석개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인데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성찰한 것이다. '사랑의 기술'을 쓴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니체나 프롬이 이 문제를 이렇게 심각하게 다룬 것은 말의 무게가 삶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혼용무도'의 암울한 시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은 '지록위마'가 용인되는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밖에 없다. 무게 없는 말, 공허한 말, 자신과 남을 속이는 말이 설 곳이 없어질 때 나라를 뒤덮은 스모그가 걷히고 길이 보일 것이다.

정치인 말의 무게, 항상 달아보자

열차나 버스가 약속을 안 지키면 항의를 쏟아내면서 정치인이 약속을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못해 무감각한 사람들이 많은 게 안타깝다.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느냐?' 따위의 생각을 가진 정치인은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

나라란 수천만 국민을 태우고 항해하는 거대한 배와 같다. 선장과 선원들에게 항해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덕목이 정직함과 책임감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해놓고 자기들은 보트를 타고 도망가버릴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정치인들의 말의 무게는 항시 저울에 달아보아야 한다. 망년회를 백번 하더라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정치인이 했던 말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의 물밑싸움이 치열하다. 야당에서는 주류와 비주류의 경쟁이 한창이다. 어느 당이든 어느 쪽이든, 그 구성원들의 말의 무게가 더 나가는 쪽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2015.12.28 석간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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