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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돌려다오
음악을 돌려다오
1999-05-07 (Fri) 전대환 [2004-09-28 00:45]
전대환 내일신문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월남 갔던 형님이 귀국하면서 휴대용 전축을 사오셨다. 요즈음이야 좋은 오디오 기기들이 어디를 가든지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판을 걸어놓고 음악을 듣는 기계를 전축이라고 불렀고, 무척이나 신기한 물건 중에 하나에 속했다. 형님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앉아서 그 전축에다가 레코드 판을 얹어 놓고 동요에서부터 국내 가요, 찬송가, 기악곡, 합창곡, 팝송, 민요 등을 듣곤 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인지 음악 듣는 것을 꽤 좋아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전축 주인인 형님의 애착이 전축에서 멀어지는 것을 틈타 그것을 아예 내 것으로 만들어버렸고 대학에 다닐 때까지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물리 시간에 선생님께서 음파(音波)를 설명하시면서 “서울에 가면 FM 방송이라는 것이 있어서 하루 종일 음악만 방송해 준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가서는 거의 대부분의 혼자 있는 시간을 FM 방송과 함께 보냈다. 그런데 아쉽게도 FM 방송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얼마간 시골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우리 집은 FM 전파가 전혀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음악이 없으면 잠시도 못 살 것 같아, 도저히 이해를 못하시겠다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인근에다가 월세 방을 하나 얻어서 따로 생활하는 유난을 떨기도 했었다. 그 셋방에서도 지붕에 높은 안테나를 달고 부스터라고 하는 장치까지 설치를 해서 겨우 FM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열이 그렇게도 뻗쳤었는지 원,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살게 되었는데, 나로서는 결혼한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내심 ‘서울 가면 FM 방송과 AFKN 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데 대한 기대도 결코 결혼에 대한 기대에 뒤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아뿔싸, 아내와 장모님이 함께 다니며 얻은 그 신혼 방이 하필이면 FM이 안 나오는 지역이라니... 그 후 시골 교회로 내려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곳 역시 FM과는 담 싼 지역이었다. 3년 후 구미 시내로 나오면서, ‘이제는 음악 좀 들으며 살겠거니’ 했는데, 하필이면 살아야 하는 곳이 형곡동이었다. 형곡동은 방송 잘 안 나오기로 유명한 곳. 이래저래 역시 나는 FM 방송과는 인연이 없다는 것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FM 방송이 시작된 후 20년이 훨씬 넘도록 아직까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스테레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곳이 아직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이 씁쓰레하다. 그나마 인터넷을 통하여 음악 방송을 청취하고싶어도 구미에는 아직까지 케이블 TV망도 없고 광케이블 전화망도 없다. 구미여, 나에게 음악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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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5-07 (F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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